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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관한 리뷰/영화

영화 <무간도>, 홍콩 느와르의 정수

by semori 2021.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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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도(無間道), Infernal Affairs

장르: 범죄 스릴러, 누아르
개봉: 2003.02.21
감독: 맥조휘, 유위강
출연: 양조위, 유덕화 등
러닝타임: 100분
시놉시스 : 경찰의 스파이가 된 폭력 조직원, 폭력 조직의 스파이가 된 경찰. 한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바뀌어버린 두 남자의 피할 수 없는 만남

홍콩 누아르의 정수

말로만 듣던 무간도를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관람했습니다. 10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갔을 정도로 몰입해서 봤습니다.  <무간도>는 19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에 홍콩에서 쏟아져 나오던 범죄 영화들을 일컫는 '홍콩 누아르'의 맥을 잇는 대표작입니다. 총 3부작 중 가장 먼저 개봉한 작품으로써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왜 수작으로 평가받는지 영화를 보며 알 수 있었습니다. 내용, 구성, 음악, 연출 등 영화의 모든 구성요소가 잘 어우러져 흡인력을 갖췄습니다. 나중에 누아르가 생각날 때 한 번쯤은 더 찾아볼 것 같습니다. 영화가 개봉된 지 18년이 되서라도 볼 수 있어서 행운이었습니다.

 

영화는 10년 전 과거 시점부터 시작됩니다. 삼합회 단원 유건명(유덕화 분)은 보스의 지령을 받고 경찰학교에, 경찰 학교생 진영인(양조위 분)은 경찰 내 황지성 국장의 지령을 받아 삼합회로 잠입해 서로 간에 스파이 활동을 시작하며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시놉시스부터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지금은 워낙 많은 범죄영화가 나와서 클리셰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 소재지만 스파이는 그만큼 보증된 아이템이기도 합니다. 이 소재를 갖고서 영화를 결말까지 어떻게 풀어나가는 것인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무간도>는 이 클리셰 소재를 더할 나위 없이 활용했기에 명작으로 남았습니다.

 

죽지 않고 영원한 고통을 받는 무간지옥

영화를 보면서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했습니다. 도입부에서 삼합회 보스가 유건명에게 지령을 내리는 장소는 사찰입니다. 무간지옥은 불교에서 쓰는 용어입니다. "무간지옥에 빠진 자는 죽지 않고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된다." 말로만 들어도 절대 가고 싶지 않은 지옥입니다. 유덕화와 양조위 둘은 모두 이 무간지옥에 빠진 채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선과 악의 대립구조가 아닌 인간 대 인간, 비슷하지만 다른 처지에 놓인 두 인간군상이 각자의 삶을 풀어나가려 하지만 이미 무간지옥에 빠져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악'으로 표방되는 삼합회 소속의 유덕화는 경찰에 잠입 후 개과천선을 꿈꿉니다. 마치 자기가 실제 경찰이라도 된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합니다. 반대로 삼합회에 잠입한 양조위는 기약없는 경찰 신분 복귀에 점점 타락해가며 삶의 의미를 잃어갑니다.

 

 두 주인공의 상황만 놓고 보면 양조위가 더 안타까워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유덕화가 더 불쌍했습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회적 지위가 보장된 자리는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데, 그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알맹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씁쓸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가공되고 거짓된 행복 속에 사는 삶이 과연 진짜라 할 수 있을까요? 그저 겉으로 보기에 좋아 보일 뿐인 지옥에 불과하다 생각합니다. 

 

강요된 선택에 무너지는 인생

두 주인공의 인생이 바뀐 건 자신의 의지가 아녔습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강요된 선택에 따른 대가는 너무나도 컸습니다. 영화는 종반부에 다시 도입부 장면으로 돌아갑니다. 경찰학교에서 스파이로 잠입하기 위해 퇴소당하는 진영인(양조위)이 뒤를 돌아보자, 유건명(유덕화)이 진영인을 쳐다보며 쓸쓸히 말합니다. 

"내가 가고 싶어."

그리고서 "무간지옥에 빠진 자는 죽지 않고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된다."라는 불경 구절이 흘러나오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경찰학교에서 두 주인공이 서로 엇비껴 나가는 순간부터 이미 무간지옥에 빠져버렸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두 주인공 모두 무간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으나 결실은 맺지 못합니다. 죽지 않은 채 영원히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선택에 담긴 무게와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삶은 고통입니다. 우리도 무간도 속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무간도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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