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억원을 건 생존게임
올 추석연휴 안방극장을 달군 <오징어게임> 후기입니다. 처가에서 3일에 걸쳐 정주행을 마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충분히 정주행할 가치가 있는 킬링타임용 드라마입니다. 표절 의혹 등도 제기되지만 그 부분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시놉시스는 무척 단순합니다. 삶의 벼랑끝에 서있는 참가자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어마어마한 상금이 걸린 게임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서바이벌을 소재로 한 여타 다른 드라마나 영화(ex. 배틀로얄, 쏘우 등)에 비해 <오징어게임>은 다소 순한 맛(?)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렸을 적 우리가 한번쯤은 해봤을 추억의 놀이를 차용해온 게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주인공인 이정재(성기훈 역할)는 회사가 10년 전 부도로 망한 뒤 막대한 빚을 떠안은 채 변변치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의문의 인물에게 명함을 건네받고서 오징어 게임이 참가하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자신을 비롯해 456명의 참가자들은 똑같은 옷, 똑같은 침대, 똑같은 공간에서 생활을 시작합니다. 핑크색 옷을 입은 진행요원들에게 안내를 받고 총 6단계의 게임이 시작되며 생존을 위한 혈투가 벌어집니다.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다
<오징어게임>에서 가장 잘 표현된 것은 바로 인간의 심리입니다. 개인의 목표(돈)를 위해서 얼마나 사람이 추악해지고 자기중심적일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습니다. 내가 만약 오징어게임에 참가했다면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등장인물들에게 무조건적인 비난을 할 수 없었습니다.
오징어게임에서 가장 강조되는 건 평등한 기회입니다. 누구나 동등한 조건에서 공정한 룰이 적용되어 게임을 이기면 상금을 수령할 수 있습니다. 다만 게임에서 지게 되면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게 무척 극단적이지만, 그것만 제외한다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축소판 그 자체였습니다. 평등하지만 그 안에서 서열과 무리가 나뉘고, 모략과 협동, 배신, 아첨 등이 난무합니다. 그 와중에 주인공인 성기훈(이정재 역)만이 가끔씩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지만, 성기훈 역시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본래 가졌던 인간적인 마음이 흔들리곤 합니다. 주변의 환경에 인간이 얼마나 쉽게 휩쓸릴 수 있는지, 반대로 한 사람의 의지가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도 주인공 성기훈을 통해 잘 그려냈습니다.
결말은 시즌2를 암시하며 끝나다.
오징어게임에서 최종 우승한 기훈(이정재)은 456억원을 수령하지만 제대로 쓰지 못한 채 폐인이 되어 생활합니다. 그는 돈을 쓸 수 없었습니다. 456억원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참가자들의 '목숨값'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인간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게임에 참가하느라 홀로 계시던 어머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한 죄책감까지 더해져 그는 게임에 참가하기 전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살게 됩니다.
게임이 끝나고 1년 뒤, 기훈은 또다시 오징어게임에 처음 참가할 때 건네받았던 의문의 명함을 받습니다. 놀랍게도 명함은 같이 게임에 참가했던 참가번호 1번 노인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시리즈 내내 의문으로 남아있던 게임의 주최자가 바로 참가번호 1번 노인, 오일남이었던 것입니다.
분노와 배신감에 치를 떨며 기훈은 병상에 누워있는 노인에게 "왜 이런 게임을 하느냐" 따집니다. 그러자 오일남은 막대한 부를 이루고 삶이 무료해져 이 살인게임을 기획했다 고백합니다. 생명의 불이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오일남은 기훈에게 게임을 제안합니다. 창가 너머 보이는 노숙자를 자정이 되기 전까지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기훈의 승리, 나타나지 않으면 자신의 승리. 결국 이 게임에도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냐(기훈) 없냐(일남)로 나뉩니다.
12시 자정이 되기 1분도 채 남지 않았을 무렵, 기적같이 노숙자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 추운 겨울날 구조받습니다. 그걸 본 기훈은 기쁨에 겨워 일남에게 자신이 이겼다 외치지만 오일남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즉, 오일남은 직접 자신이 참가한 게임에서부터 생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임을 승리했다 생각하며 숨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숨을 거둔 오일남을 뒤로한 채 기훈은 건물을 나섭니다. 이후 미용실에서 머리를 빨갛게 물들입니다. 빨갛게 머리를 물들인 채 딸이 있는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려다가 오징어게임 주최측에 전화를 겁니다. 프런트맨(이병헌 역)이 "그 비행기를 타는 게 좋을 겁니다."라고 하지만 이를 무시한 채 기훈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서며 시리즈는 종료됩니다.
빨간 머리를 한 기훈은 앞으로 시즌2가 나온다면 오징어게임을 주최한 배후세력을 밝히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따뜻한 심성을 가지고 있는 기훈의 빨간 머리는 '저항'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해줬습니다. 동시에 자신은 끝까지 인간으로서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진 결말이었습니다.
한국 드라마 최초로 넷플릭스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오징어게임>. 충분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으며, 시즌2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덕분에 추석 연휴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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