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필자들의 PTSD 자극 드라마
장르 : 드라마, 밀리터리
공개일 : 2021년 8월 27일
러닝 타임 : 총 6화, 290분
채널 : 넷플릭스
연출 : 한준희
출연 : 정해인, 구교환, 김성균, 손석구 외
원작 : 웹툰 <D.P 개의 날>
넷플릭스에서 8월 27일 공개된 디피가 요즘 화제입니다. 저도 지난 주말 몰아서 D.P를 시청했는데 무척 재밌게 봤습니다. 군대물 드라마로 헌병을 주제로 한 <D.P 개의 날>이라는 웹툰이 원작입니다. 여기서 D.P.란 군무이탈체포전담조(Deserter Pursuit)의 약자이며, 웹툰 작가 본인이 군생활에서 겪은 실제 경험을 모티브로 제작됐다고 합니다. 각종 매체에서 공개 전 디피 광고를 많이 들었는데 D.P병이 따로 있다는 건 저도 이 드라마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됐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민방위 3년 차인 저는 이걸 보고 약간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왔습니다. <디피>의 시대 배경은 2014년입니다. 불과 6년 전이라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할 겁니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저런 일이 있다고?
드라마라서 각색한 거 아니야?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과 6년 전임에도 군에서는 가혹행위로 인하여 사건 사고가 많이 발생하던 시기입니다. 대표적인 게 윤일병 사망사건과 임병장 GOP 총기난사 사건입니다. 윤일병은 선임병과 간부들에게 폭행을 당해 사망했고, 임병장 사건은 가혹행위에 못 이겨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발사해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당했던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당시 뉴스 인터뷰에 나온 시민이 "참으면 윤일병이 되는 거고 못 참으면 임 병장 되는 현실에서 어떻게 자식들을 군대를 보내느냐"라 한 말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넷플릭스 디피에서도 각종 가혹행위가 적나라하게 그려집니다. 후임병의 편지를 뺏어서 읽기, 코골이 하는 후임병에게 방독면을 씌우고 물을 들이붓기, 얼차려 주기, 선임 앞에서 원숭이 흉내 내게 하기 등 그 수위가 무척 높습니다. 저는 2009년~2011년 사이에 군생활을 했는데 신체적 폭력 등은 당하지 않았으나 위와 비슷한 걸 겪는 선임들을 직접 눈앞에서 봤습니다. 폐쇄된 군대 문화에서 암세포처럼 곳곳에 퍼진 가혹행위, 폭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옆에서 같이 보는데 군대에서 정말 저러냐고 묻는 질문에 얼버무려 대답했습니다...
흥미진진한 소재와 돋보이는 연출
비록 군필자들에겐 PTSD가 오는 드라마지만, 드라마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들여다보면 매우 잘 만든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제대 후 복학해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군대 이야기는 하지 마라'였습니다. 일단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여자들이 꺼려하기도 하고 재미없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넷플릭스 드라마는 군대 이야기임에도 너무나 재밌습니다. 군필자인 저한테도 생소한 D.P병이니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흥미로운 소재를 바탕으로 D.P병들이 탈영병들을 잡아오는 과정, 그리고 왜 탈영병들이 탈영하게 되었는지 감독은 섬세하게 연출했습니다. 그 덕분에 매회 거듭될 때마다 몰입해서 극 중 탈영병과 주인공들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캐스팅입니다. 사연 많은 주인공 안준호 이병 역의 정해인, 익살스럽고 사회생활 만렙인 한호열 상병 역의 구교환이 중심을 잡고 드라마를 이끌어갑니다. 특히 구교환 배우의 생활연기는 압권이었습니다. 저런 선임과 만나서 군생활했으면 참 재밌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외 조연들도 정말 군대에서 한 명쯤은 있을 법한 사람들로만 캐스팅돼서 신기했습니다. 캐스팅 디렉터가 심혈을 기울여 배우들을 섭외했겠다 싶었습니다.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 드라마
<디피 D.P>는 다른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비해 러닝타임이 다소 짧은 편입니다. 시즌2 제작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인기를 끌었던 <킹덤>, <인간수업>, <보건교사 안은영> 등에 비하면 6화밖에 안되기 때문에 아쉽기도 합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시간 날 때 반나절 정도면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시리즈입니다.
길지 않은 러닝타임으로 재밌게 볼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드라마였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장병들의 휴대폰 사용, 동기끼리 내무반 사용 등 군대문화가 많이 개선됐음에도 여전히 어디선가는 <디피>에서 묘사된 군대 내 부조리가 남아있을 것입니다. 극 중에서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우리는 선임돼서 애들한테 잘해주자." 결국 그 말을 지키진 못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한 명씩 늘어가야 군대 문화도 조금씩 바뀔 것입니다. 폐쇄된 군대 환경 속에서 이런 신념을 이어가긴 쉽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노력해가야만 바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PTSD가 왔지만 드라마 자체는 너무나 볼만했던 <디피>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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